부산 변호사 한병철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12.
- - 몰래 찍혔다면, 외국인도 똑같이 보호받는다
◇ 비자 걱정에 신고를 미루면 회복이 더 어려워진다
탈의실 거울 너머의 작은 불빛
기숙사 샤워실, 회사 탈의실, 지하철 계단. 한 이주노동자가 옷을 갈아입다 천장에서 작은 렌즈를 봤다. 또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치마 쪽으로 들이대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범인'이 아니었다. "내가 신고하면 비자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 망설임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입을 닫는다. 특히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은 더 그렇다.
◇ 신고를 미루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나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외국인이 신고하면 체류에 불이익이 생긴다." 그러나 범죄 피해를 신고하는 것과, 본인이 범죄로 처벌받는 것은 전혀 다르다.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은 법으로 보호된다(성폭력처벌법 제24조). 범죄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체류 자격을 빼앗는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조사 과정에서 통역도 요청할 수 있다.
오히려 망설이는 사이 가해자가 움직인다.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증거를 지우고, 피해자에게 먼저 접근해 합의로 사건을 덮으려 한다.
◇ 한국 법은 노출이 아니라 동의를 본다
한국의 기준은 성폭력처벌법(성범죄를 처벌하는 특별법) 제14조에 있다.
조건은 두 가지다.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할 것, 그리고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일 것.
핵심은 사진이 얼마나 노출됐느냐가 아니라, 내가 동의했느냐다. 옷을 입은 모습이라도, 동의 없이 그런 의도로 찍혔다면 범죄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국 법은 피해자에게 넓게 열려 있다.
미국은 '은밀한 부위'와 '사생활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있어야 처벌하고(영상관음 처벌법), 일본도 성적인 자태 촬영을 주로 다룬다. 베트남은 초상권·모욕죄 같은 민사·명예 문제로 접근하고, 중국은 사적 공간 몰래촬영을 가벼운 행정처벌로 다룬다. 같은 피해라도 본국에서는 다루기 어려웠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다르다.
◇ 동의하고 찍은 영상도 보호된다.
헤어진 상대가 "영상을 퍼뜨리겠다"며 위협하면, 그 자체가 범죄다(제14조 제2항, 제14조의3 협박).
게다가 카메라 촬영죄는 친고죄(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하는 죄)도,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죄)도 아니다. 한 번 수사가 시작되면, 가해자가 뒤늦게 합의를 원해도 처벌 절차는 따로 진행된다.
◇ 지금 움직이는 순서
피해를 알게 됐다면 순서가 있다.
먼저 오늘 안에 할 일이 있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고 112에 신고한다. 몰래카메라로 의심되는 장치는 함부로 만지지 말고 경찰에 맡긴다. 화면 캡처, 시간, 장소를 기록해 둔다. 외국인등록증과 여권을 챙기고, 통역이 필요하면 요청한다.
◇ 다음 며칠 안에 할 일이 있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연락한다. 영상 삭제와 수사·소송을 무료로 돕는 국가 기관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1377)에도 삭제를 신청할 수 있다. 증거를 정리하고 변호사와 상담한다. 피해자에게 국선변호사(나라가 비용을 대는 변호사)를 붙일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절대 하지 말 일도 분명하다. 가해자와 단둘이 합의하려 하지 않는다. 신고 전에 합의하면 사건화 자체가 막히는데, 그것이 바로 가해자가 노리는 길이다. 영상을 직접 지우려 하지 않는다. 증거가 사라진다. 혼자 가해자를 추궁하지도 않는다.
◇ 변호사가 들어오면 무엇이 달라지나
변호사는 네 가지를 함께 본다.
첫째, 증거 정리다. 화면 캡처, 게시 주소(URL), 시간 기록을 어떻게 남길지 잡아준다.
둘째, 절차 선택이다. 형사 고소, 영상 삭제 지원, 민사상 손해배상 중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한다.
셋째, 타이밍 판단이다. 신고를 먼저 하고, 합의가 필요하면 그 뒤에 변호인을 통해 진행한다.
넷째, 실수 방지다. 가해자와 직접 연락하다 2차 피해를 입는 일을 막는다.
변호사가 개입하면 삭제 요청, 수사 협조, 손해배상의 흐름이 달라진다. 통역과 절차 안내까지 더해지면, 언어와 제도의 벽 때문에 불리해지지 않는다.
◇ 침묵이 아니라 한 번의 신고
이미 퍼진 영상을 완전히 지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빠른 대응이 회복 가능성을 높인다.
국적이 달라도 한국 법은 피해자를 보호한다. 지금 필요한 건 참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지키고 신고하는 것이다.
한병철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 변호사
(대한변협 인증 형사전문변호사 · 부동산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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