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덩굴에 덮인 교문, 사라진 아이들의 온기와 40년의 세월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거친 파도가 전국의 작은 마을들을 덮치고 있다.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찾아간 고향 모교의 모습은 차마 언어로 다 담기 힘든 충격과 아련함을 안겨주었다. 한때 들꽃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운동장을 누비던 활기찬 함성으로 가득했던 교정은 온데간데 없고, 찬 바람만이 우거진 풀숲을 쓸고 지나갈 뿐이었다. 아담했던 본관 건물은 이제 녹색의 거대한 잡풀과 덩굴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덮여 있었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도, 이곳에 수많은 이들의 유년과 꿈이 숨 쉬던 중학교 모교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이제는 세월의 이끼 속에 묻혀가고 있다. 숲이 되어버린 옛 교정 앞에 서서 묻게 된다. 우리는 기술과 교통의 편리함을 얻은 대신, 과연 무엇을 이 땅에서 잃어버린 것인가?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위치한 백야도는 과거 해상 교통이 섬 주민들의 유일한 발이자 생명선이었던 곳이다. 40여 년 전만 해도 이 섬의 학생들은 육지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등교하거나,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학업을 이어갔다. 당시에는 다리가 없었기에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 백야도는 나름의 독자적인 생활권과 높은 인구 밀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교(백야대교)가 개통되고 전국적인 도시화 및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역설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다리가 생기면 섬이 더 잘살고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교통의 발달은 정주 인구를 유출시키는 빠르고 편리한 통로가 되었다. 청년층이 일자리와 교육을 찾아 도시로 떠나면서 섬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겼고,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모교는 결국 학생 수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폐교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 다리가 연결된 역설, 섬이 잃어버린 생기
전문가들은 백야도와 같은 섬 지역의 폐교 현상이 단순히 한 학교의 문을 닫는 문제를 넘어 지역 사회 전체의 소멸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라고 지적한다. 인구통계학적 데이터에 따르면 대한민국 지방 지자체 및 도서 지역의 학령인구 감소 속도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다. 지역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가 사라짐으로써 지역 사회의 공동체적 중심축이 무너지고, 이는 다시 인구 유출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분석한다. 과거 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의 고단함은 사라졌지만, 편리해진 다리 위로 사람과 물자가 빠져나가면서 섬의 정체성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와 문화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폐교 부지를 단순히 방치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담은 문화 공간이나 주민 복지 시설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돌이켜보면 40여 년 전 백야도에서의 학창 시절은 위험과 낭만이 찰나의 순간마다 교차하던 날들이었다. 태풍이 올라오거나 성난 파도가 몰아치는 날이면 배가 뜨지 않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이 일쑤였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육지로 하교하던 어떤 날에는 집어삼킬 듯 밀려오는 거친 파도에 가방을 휩쓸려 빼앗기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육지 해안가 밀물에 밀려온 책가방을 찾아 헤매면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웃던 친구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 그 시절의 아련한 감정과 추억을 나누었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모교의 형태조차 풀숲에 가려져 형체를 잃어버린 현실은, 단순히 옛 건물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찬란했던 유년의 기억과 고향의 정체성이 함께 마모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편리함과 효율만을 추구해 온 현대 사회의 개발 논리가 정작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아야 할 지역 공동체의 온기를 어떻게 앗아갔는지 백야도 폐교 현장은 명백히 보여준다.

▶ 소멸의 시대를 넘어 모교의 기억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풀숲에 가려진 모교 터를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우리가 방치하고 잊어가고 있는 고향의 유산들은 과연 이대로 사라져도 좋은 것인가. 백야도의 푸른 바다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넘실대지만, 그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던 아이들과 그들의 배움터는 이제 과거의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인구 감소와 폐교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지나간 날의 그리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지역의 기억과 공간을 어떻게 보존하고 기록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잡초 속으로 사라진 백야도 옛 중학교의 교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방의 살아있는 역사와 사람의 온기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묻고 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고향의 모교나 옛 추억의 공간은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이번 주말, 잊고 지냈던 고향의 옛 터를 찾아가 그곳이 가진 역사와 기억을 다시 한번 기록하고 가족, 친구들과 나누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관심과 방문이 사라져가는 지방과 섬 마을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