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폰이 없어서 불편했던 몇 시간이었다. 그런데 화면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번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월차를 내고 가족과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나는 아내와 아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도 영상으로 남겼다. 좋은 풍경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냈다. 재미있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켰다. 우리 가족의 행복한 하루를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사진으로 남겨두면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 있고, 영상으로 기록해두면 그날의 목소리와 표정까지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나는 부지런히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겼다.
충전선을 빼려는데 줄만 빠졌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 온 보조배터리를 연결했다. 그런데 충전이 되지 않았다. ‘왜 충전이 안 되지?’ 이상하다 싶어 보조배터리에 꽂혀 있던 충전선을 빼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툭.’ 줄만 빠졌다. 충전 단자는 휴대폰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순간 당황했다. ‘이게 왜 안 빠지지?’ 손으로 잡아당겨도 보고 이리저리 움직여봤지만 빠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휴대폰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괜히 억지로 빼려다가 충전 단자뿐 아니라 휴대폰까지 고장 날 것 같았다. 결국 포기했다. 그 순간부터 휴대폰은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아쉬웠다.
에버랜드의 밤은 휴대폰에 남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버랜드에는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화려한 불빛이 놀이공원을 채우고 멋진 야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사진도, 영상도 찍을 수 없었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자꾸 생각했다. ‘휴대폰만 됐으면 찍었을 텐데.’ 아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도, 아내와 함께 바라보던 야경도, 에버랜드의 화려한 밤도 더 이상 휴대폰에 담을 수 없었다. 낮 동안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남겼는데 정작 밤이 되자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렇게 에버랜드에서의 밤은 내 휴대폰에 남지 못했다. 다만 내 눈과 기억 속에만 남았다.
휴대폰 없이 출근길에 나섰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휴대폰 수리를 부탁하고 나는 휴대폰 없이 출근길에 나섰다. 참 어색했다. 주머니에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했다. ‘혹시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누군가 나에게 연락하면 어떡하지?’ 시간을 확인하려다가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빈손으로 다시 빼기도 했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휴대폰이 없으니 그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답답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리가 끝날 때까지는 휴대폰 없이 지내야 했다. 결국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래. 그냥 가보자.’ 그리고 평소처럼 회사까지 걸었다.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평소와 똑같은 출근길인데 보이는 것이 달랐다. 생각해보니 평소 나는 걸으면서도 수시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메시지를 확인했다. 뉴스를 보기도 했다. 블로그를 살펴보았다. 이것저것 확인하며 걸었다. 몸은 길 위를 걷고 있었지만 시선은 작은 화면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그날은 바라볼 휴대폰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원래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보지 않았던 거구나
길 위로 떨어지는 낙엽이 보였다. 길가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작은 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에서는 게임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도 보였다. 대단한 풍경은 아니었다. 관광지에서 만나는 멋진 장면도 아니었다. 사진을 찍어 자랑하고 싶은 특별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출근길에서 만난 작은 장면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매일 걷던 길이었다. 어제도 걸었다. 그제도 걸었다. 수없이 지나쳤던 길이었다. 그렇다면 낙엽은 그날 처음 떨어졌던 것일까. 그 길에는 그날 처음으로 작은 생명과 사람들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보지 않았던 거구나.’ 길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내 시선이 달라졌던 것이다.
기록하려다 오히려 바라보지 못했던 것은 없을까
조금 아이러니했다. 나는 에버랜드에서 가족과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휴대폰을 사용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고, 좋은 순간을 기록했다. 그런데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오히려 눈으로 더 많은 장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물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은 내게 중요하다. 나는 기록을 좋아한다. 시간이 지난 뒤 사진 한 장을 보며 그날의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영상을 촬영할 것이다. 다만 이번 일을 겪으며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남기기 위해 바라보느라 정작 지금을 충분히 보고 있지 못했던 것은 없을까.’ 카메라 화면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것과 내 눈으로 가족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는 것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을 직접 살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사진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의 밤은 내 휴대폰에는 남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사진을 찍지 못했기 때문에 그날 밤의 아쉬움과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휴대폰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게 휴대폰은 꼭 필요한 물건이다. 가족과 연락한다.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다. 글을 쓰는 데 활용하고 블로그와 SNS를 운영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내 일상에서 휴대폰이 사라진다면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몇 시간 사용하지 못했을 뿐인데도 답답했다. 문제는 휴대폰 자체가 아니었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필요할 때는 화면을 바라보되 가끔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 그 정도의 여백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보니 또 다른 이야기가 생겼다
그날 보았던 낙엽. 작은 벌 한 마리. 게임을 하고 있던 청년. 휴대폰이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 모습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생각이 생겼다. 생각이 생기니 또 글감이 되었다. 앞으로 그날 만났던 장면들을 하나씩 글로 기록해볼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쓰는 일상의 글도 결국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특별한 일이 매일 생겨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하루에서 무엇을 바라보았는지, 그 장면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생각을 붙잡아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휴대폰이 없었던 몇 시간은 어쩌면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휴대폰이 내 손에 돌아왔다
다행히 휴대폰은 오전 중에 수리가 끝났다. 아내가 회사까지 직접 가져다주었고 나는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이 손에 들어오니 반가웠다. 편했다.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것들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이후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글을 보고, 사진을 찍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휴대폰 없이 걸었던 그날의 출근길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휴대폰이 없어서 답답했던 출근길이었는데,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나는 길을 걸을 때 얼마나 자주 주변보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가.
매일 지나치는 곳인데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풍경은 없는가.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그 순간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적은 없는가.
오늘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고 바라본다면 무엇이 새롭게 보일까.
결국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
휴대폰이 없어서 답답했던 하루였다. 가족과 함께한 에버랜드의 밤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출근길에는 연락을 확인할 수 없어 불안했고, 습관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다시 빼기도 했다. 분명 불편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불편함 때문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길가에 있던 작은 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한 청년의 모습에도 시선이 머물렀다.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풍경도 늘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내가 바라보는 곳이었다. 휴대폰 화면이 사라지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날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지 않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고. 휴대폰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앞으로도 휴대폰을 사용할 것이다. 사진도 찍고, 영상을 남기고, 글도 쓰고, 필요한 정보를 찾을 것이다. 다만 가끔은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어두고 고개를 들어보고 싶다. 내 앞에 누가 있는지, 길가에는 무엇이 있는지, 오늘의 하늘은 어떤지, 내가 매일 지나치는 평범한 일상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 화면을 바라보는 것만큼 기록할 만한 삶을 발견하기 위해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할 테니까. 휴대폰이 없었던 몇 시간. 불편해서 고개를 들었고, 고개를 들자 비로소 보였다.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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