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252화 떨어지는 낙엽

계절은 자신의 속도로 다음으로 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머물러 있을 때 충분히 바라보는 것

‘떠나야 할 때가 오면 그때, 천천히 내려앉기를.’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ChatGPT]

 

아직 가을을 충분히 바라보지도 못했는데 나뭇잎은 벌써 땅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 어쩌면 계절을 바라보는 마음도,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도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떨어지는 낙엽 / 김기천

 

길었던 여름이 떠나고
기다리던 가을이 찾아왔다.

 

조금은
머물다 가겠지.

 

그런데
그늘진 곳의 나뭇잎은

 

어느새 염색을 마치고
하나 둘 땅으로 내려앉는다.

 

아직 가을을
다 바라보지도 못했는데.

 

조금만 더
머물러도 좋으련만.

 

붙잡을 수 없는 계절처럼
우리의 시간도 그러할까.

 

머물러야 할 때에는
충분히 머물다가

 

떠나야 할 때가 오면
그때,

 

천천히 내려앉기를…

 

길었던 여름이 떠났다

길었던 여름이 지나갔다. 올해도 뜨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걷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조금만 움직여도 더위에 지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 가을이 오는구나.’ 기다렸던 계절이었다. 뜨거웠던 공기가 조금씩 식고, 밖을 걷는 일이 다시 즐거워지는 계절. 나는 가을이 조금은 오래 머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나뭇잎의 색이 변하고, 선선한 바람을 충분히 느끼고, 그렇게 한동안 가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을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늘진 곳의 나뭇잎은 어느새 색이 변해 있었다. 초록이었던 잎은 자신만의 색으로 염색을 마치고 하나둘 땅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낙엽이 보였다. 이제 막 가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떨어지고 있었다.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벌써?’ 아직 가을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것 같은데 말이다. 조금만 더 나무에 매달려 있어도 좋으련만. 조금만 더 가을다운 풍경을 보여줘도 좋으련만. 나는 벌써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혼자 계절을 붙잡고 있었다.

 

조금만 더 머물러도 좋으련만

생각해보면 계절을 바라볼 때마다 비슷한 마음이 든다. 봄이 찾아오면 꽃이 너무 빨리 지는 것이 아쉽다. 가을이 찾아오면 단풍을 충분히 바라보기도 전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좋아하는 순간은 조금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행복한 시간도 그렇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도 그렇다. 하지만 내가 머물러달라고 한다고 해서 계절이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꽃은 때가 되면 지고, 나뭇잎은 때가 되면 떨어진다. 계절은 자신의 속도로 다음으로 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을 때 충분히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붙잡을 수 없는 계절처럼

‘붙잡을 수 없는 계절처럼 우리의 시간도 그러할까.’ 시를 쓰면서 이 문장에서 잠시 멈추었다. 계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간도 계속 흐르고 있다.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의 나이도,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도 그대로 멈춰 있지 않는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아이는 자라 있고,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 있고, 나 역시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계절이 어느새 바뀌어 있듯 삶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머물러야 할 때 충분히 머문다는 것

이번 시에서 내가 오래 생각한 것은 ‘떠남’보다 오히려 ‘머무름’이었다. 떠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계절도 떠나고, 시간도 지나가며, 우리 역시 계속 다음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머물러야 할 때에는 충분히 머물다가.’ 이 문장을 쓰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에는 충분히 함께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그 시간을 충분히 살아보는 것. 누군가 내 곁에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을 충분히 바라보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 것. 어쩌면 충분히 머문다는 것은 시간을 오래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안에 내 마음을 제대로 놓아두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뒤에야 소중함을 알지 않도록

우리는 종종 지나간 뒤에야 소중함을 발견한다. 그때 조금 더 잘할걸. 그때 조금 더 이야기할걸. 그때 조금 더 함께할걸. 그때 조금 더 바라볼걸.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계절을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가. 매일 해야 할 일을 따라가느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이 지나간 뒤에야 오늘이 좋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떨어진 낙엽을 다시 나뭇가지에 붙일 수는 없다. 지나간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아직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잎을 바라보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떠날 때가 오면 천천히 내려앉기를

나는 이 시를 쓰면서 낙엽에게 조금 욕심을 부렸다. 조금만 더 머물러달라고. 아직 가을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으니 너무 빨리 떨어지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결국 나뭇잎은 떨어질 것이다. 떠날 때가 오면 떠나야 한다. 그것이 계절의 순리일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속 한곳에 머물 수는 없다. 때로는 익숙한 것을 떠나야 하고, 새로운 곳으로 움직여야 하며, 한 시기를 마치고 다음 시기를 맞아야 한다. 다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아쉬움만 남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해볼걸.’ ‘조금 더 사랑할걸.’ ‘조금 더 살아볼걸.’ 그런 마음보다, ‘그래도 충분히 머물렀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보았다.’ 그렇게 말하며 다음으로 향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런 마음을 담았다. ‘떠나야 할 때가 오면 그때, 천천히 내려앉기를.’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금 내 삶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너무 익숙해서 충분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순간은 없는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조금 더 해볼걸’이라고 후회할 것 같은 일은 없는가.

지금의 계절이 떠나기 전에 나는 무엇을 더 바라보고 기억하고 싶은가.

 

결국 머물 때 충분히 머무는 것이다

길었던 여름이 끝났다. 기다렸던 가을이 찾아왔다. 그런데 벌써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금만 더 머물러도 좋으련만.’ 하지만 계절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머물 때가 있고, 떠날 때가 있다. 우리의 시간도 그럴 것이다. 지금 일곱 살인 아이도 계속 자랄 것이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계속 나이를 먹을 것이며, 나 역시 지금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기 전에 머물러 있는 지금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다. 함께할 수 있을 때 함께하고, 말할 수 있을 때 마음을 전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 해보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충분히 바라보는 것.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면 언젠가 떠나야 할 순간이 찾아와도 조금은 편안하게 다음으로 향할 수 있지 않을까. 떨어지는 낙엽에게 말하고 싶었던 마음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급하게 다음으로 향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의 계절을 충분히 살아도 된다고. 그리고 떠나야 할 때가 정말 찾아오면, 그때는 미련 때문에 붙잡혀 있기보다 충분히 머물렀던 시간을 마음에 담고 천천히 내려앉아도 된다고. 가을이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지금이라는 계절을 너무 빨리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머물러야 할 때에는 충분히 머물다가, 떠나야 할 때가 오면 그때, 천천히 내려앉기를.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6.09.30 10:49 수정 2026.09.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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